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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그림책작가

버지니아리버튼1

by 홍 솔 2007. 4. 26.
버지니아 리 버튼
버지니아 리 버튼(1909∼1968)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학장인 아버지와 시인이자 음악가인 어머니에게서 사물을 보는 정확함과 예술적인 감수성을 골고루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는 발레리나가 꿈이었으나, 후에 캘리포니아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여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조각가인 남편의 도움을 받아 예술적인 재능을 더욱 꽃피웠다. 하지만 진정한 촉매제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버튼은 둘째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 만화에만 열중하는 아들을 보고 만화를 뛰어넘는 그림책을 손수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어린이가 흥미로워하는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탓에, 첫 번째 그림책은 아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만다. 버튼은 좌절하지 않고 이번에는 만화 장르에서 긴박한 이야기 전개 기법과 역동적인 화면 구성을 대담하게 받아들여 다음 그림책인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를 완성했다. 첫 아들 아리스에게 헌정된 이 그림책은 물론 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출간된 지 반 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탈것 그림책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 뒤로 버튼은 삽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둘째 아들 마이클을 위해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케이티와 폭설> 등을 만들었고, 1943년에는 <작은 집 이야기>를 출간하여 칼데콧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버튼은 이에 그치지 않고, 태고부터 인류가 탄생하기 전까지의 웅장한 드라마를 담은 <생명의 역사>를 출간하여 과학 그림책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버튼은 어린이들을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난감이나 탈것 따위의 소재로 글을 재미나게 구성하는 게 그렇고, 두 페이지가 마치 한 페이지처럼 연결되어 S자형 구도를 이루는 그림과 그 그림이 주는 속도감과 역동성이 그렇고, 그림과 통일된 느낌을 주는 주는 글자의 배열이 그렇다


1.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1937)
증기기관차가 제 궤도를 이탈해서 벌이는 소동을 그린 이야기. 소리내어 읽을 수 있게끔 되어 있는 힘찬 문장과 극적인 모험을 떠나는 증기기관차의 질주를 보여주는 흑백 그림이 싱싱한 활기를 뿜는다. 작자의 어느 그림책보다 역동적이다. 흑백 그림이 지니는 상상의 여백, 증기기관차에 대한 지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미국 그림책의 황금기라 일컬어지는 1930년대 대표작가의 하나이다. 버튼은 만화에만 열중인 아들에게 보이려고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처음엔 아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의 긴박한 이야기 전개와 다이내믹한 화면 구성을 받아들여 이 책을 만들었고 단번에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아이들은 탈것을 무척 좋아한다. 모형 중장비며 기차며 비행기 같은 것을 가짓수대로 사 모으기도 하고 뒤태나 헤드라이트만 보고도 무슨 차인지 척척 알아맞히기도 한다. 저 혼자 굴러가는 탈것 자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섞인 동경과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당대의 어느 작가보다도 탈것 그림책에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모두 해서 아홉 권인 그림책 가운데에서 네 권이 탈것을 소재로 한 것이다. 버튼 자신도 엄마로서 탈것들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아이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난 그림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은 유난히 기차를 좋아하는 첫째아들 아리스를 위해서 집 근처에 있는 그로스터 선의 기관차를 모델로 하여 만든, 엄마의 사랑이 담뿍 담긴 그림책이다. 꼬마 기관차 치치는 도시락(탄수차)만 달랑 들고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떠난다. 뭐가 부족해서 울타리를 떠나는 건 아니다. 그저 주인공이 되고 싶고, “나 여기 있어요”라고 알리고 싶어서일 뿐이다. 치치는 주위의 사랑과 관심을 저 혼자 차지하고 싶어하고, 딱히 이유가 없는데도 말 안 듣고 떼만 쓰는 천생 “미운 세 살”이다. 하지만 막상 떠나보니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치치의 속도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면서 화면도 같이 숨이 가빠진다. 꼬마 기관차가 지나간 자리는 모든 그림이 사선으로 누워 있어서 무언가가 방금 쌩 하고 코앞을 지나간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전해 준다. 꽉 짜인 활자의 배열은 이 말괄량이의 탈출에 리듬감과 속도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치치가 불안감을 느끼는 부분서부터는 그때껏 살아서 펄펄 날뛰던 활자의 배열도 느슨하게 풀어져 화면 한귀퉁이에 다소곳이 자리잡는다. 이 부분서부터는 자음만 있는 활자, 그리고 이어지는 말없음표들로 먹을 것도 없이 낯선 길에 들어선 꼬마 기관차가 느끼는 두려움을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올빼미가 눈을 부라리고 있는 달빛 으스스한 어둔 밤에 선로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귀신 같은 몰골로 서 있는 나무들 밑에 오도카니 서 있는 꼬마 기관차 그림을 보라! 이 세상에 검은 콘테 한 자루만 있다고 해도 버튼에게는 그것이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호재였다. 꼬마 기관차가 전혀 악의 없이 벌이는 소동에 처음에는 모두들 화를 내지만 그 귀여운 말괄량이를 언제까지나 미워할 수는 없지 않을까? 치치를 무섭게 하는 나무들과 부엉이까지 치치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하나같이 치치를 향해 손을 내뻗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선 사이로 꼬마 기관차는 사이드 카의 호위까지 받으면서 자기를 지켜 주는 울타리로 돌아온다. 치치는 수많은 별들이 내려다보는 하늘 아래를, 조그만 헤드라이트를 켜고 연기를 뿜으며 달려가면서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아이들이 작은 경험을 통해서 엄마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훌쩍 크는 것처럼, 말썽 많은 모험을 하면서 꼬마 기관차는 그새에 부쩍 자라난 것이다.

2.마이크멀리건과 증기삽차(1939)
엔진의 발전 때문에 실업의 위기에 몰린 기관사와 증기삽차가 씩씩하게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 구성과 색채, 성격묘사와 극적으로 결말을 전환시키는 작자의 능력이 탁월하다. 참된 사랑으로는 낡고 쓸모 없는 것들로부터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진지한 주제를 신나고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고도의 산업사회. 소비가 미덕이고 이윤을 창출해야 쓸모 있는 것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자본주의 세상. 여기가 오늘날 우리 어린이들이 자라는 토양이다. 작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당연시되는 요즈음의 세태를 다시 짚어보길 권하고 있다. 책 속의 사내아이처럼 산업사회의 그늘에 새 빛을 줄 수 있는 애정어린 관심과 지혜로.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는 메리 앤이란 이름의 증기 삽차와, 산업 문명이 발달하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한 증기 삽차를 사랑하는 기관사 마이크 멀리건과 낡은 기계의 가치를 새롭게 창조해 낸 건강하고 밝은 금발 사내아이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빨간 증기 삽차 메리 앤과 그 삽차의 기관사 마이크 멀리건은 대단히 성실한 일꾼이다. 사람들은 사람 백 명이 일 주일 동안 해야 끝낼 수 있는 일을 혼자서 해내는 이 증기 삽차와 기관사를 너무나 대단하게 생각했다. 마이크 멀리건과 메리 앤은 구경꾼이 있으면 더욱더 힘을 내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증기 삽차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좀더 편리한 새 기계를 발명해 내놓고는 증기 삽차의 위대함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거나 처리할 방법을 연구한다. 하지만 마이크 멀리건은 빨간 증기 삽차를 버리지 못한다. 이런 마이크 멀리건을 보며 어떤 이는 새 증기 삽차를 살 돈이나 새 증기 삽차를 운전할 기술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이크 멀리건은 신 기술과 새 기계를 살 자본이 없어라기보다는 증기 삽차가 자신에게 아주 의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사랑한다”라는 아주 짧은 말로.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메리 앤은 쓸모 없고 무능한 존재가 되어 대도시에서 밀려난다. 마이크 멀리건과 메리 앤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아주 작은 시로 가서 시청 기초 공사를 하게 된다. 메리 앤과 마이크 멀리건을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한 작은 사내아이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발전하는 기계 문명 때문에 버림받은 패배자의 모습을 벗고 활기차고 건강하게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마침내 마이크 멀리건은 시청의 수위로, 메리 앤은 증기를 푹푹 뿜어내어 시청 회의실을 데우는 증기 보일러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버튼은 어린이들을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탈것 따위의 소재로 글을 재미나게 구성하는 게 그렇고, 두 페이지가 마치 한 페이지처럼 연결되어 S자형 구도를 이루는 그림과 그 그림이 주는 속도감과 역동성이 그렇고, 그림과 통일된 느낌을 주는 글자의 배열이 그렇다. 버튼의 이런 재능은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에서도 어김없이 잘 발휘되고 있다. 이 책은 삽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녀의 작은 아들 마이클을 위해 만든 것이다.

3.작은집 이야기(1942)
오래된 '작은 집'이 살고 있는 시골 언덕이 도시로 변하는 과정을, 작가의 주관적인 목소리를 끼워 넣기보다는 차분하고 객관성 있게 그림으로 포착해내고 있어 더더욱 설득력이 큰 그림책이다. 나선형으로 그려진 문장도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미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 주며, 바퀴 달린 교통기관의 발전과정도 엿볼 수 있다. 1943년에 칼데콧 상을 수상한 이 그림책은 미국이 거대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무섭게 변하던 시기에 태어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된 세상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어린이들에게도 사람의 생활에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조용히 일깨워주는 귀한 그림책이다. 1943년에 칼데콧상을 수상한 이 그림책은 미국이 거대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무섭게 변하던 시기에 태어난 작품이다. 이러한 시대 배경에서 태어난 그림책이니만큼 이 책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된 세상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이와 비슷한 산업화의 진통을 겪으면서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어버린 우리의 정서와도 맞아떨어지는 요소가 많아 어른들에게는 냇가에서 벌거벗고 멱감고 뛰놀았던 옛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어린이들에게도 사람의 생활에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조용히 일깨워주는 귀한 그림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책을 펼치면, 오래된 동요인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하고 시작되는 노래가 들려올 듯도 하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데이지꽃 송이가 흩날리고 달밤에 춤을 추는 사과나무가 있는 언덕 위에서 평화롭게 아랫마을을 굽어보고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있던 조그만 집에 닥친 사건을, 억지로 의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은 싫으면 소리라도 지르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하지만, 스스로는 어디로 옮아가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무생물인 작은 집은 발전을 명분삼아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서글픈 마음으로 지켜보고 견뎌낼 도리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붕과 창문에 시커먼 먼지가 켜켜이 쌓인 작은 집은 마침내 폐가가 되어버리고, 그 주변은 공해에 찌든 도시로 변하고 만다. 이제, 작은 집은 밤마다 그 옛날에 살았던 시골을 꿈꾼다. 소망이 차고 넘쳐나면 현실로 끝내 이루어지는 법. 마침내 작은 집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시골 마을로 옮겨지게 되고, 옛날처럼 예쁜 분홍색 칠도 새로 한다. 독특한 S자형 구도가 돋보이는 이 그림책은 활자의 배열까지도 그림의 한 부분으로 통일성을 얻고 있고, 이러한 구도를 통하여 빼어나게 아름다운 선의 흐름을 보여준다. 활자의 배열이 그림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은 버지니아 리 버튼이 보여주는 독특한 장기의 하나이다. 이 그림책은 현대 사회가 앓고 있는 무거운 문제를 테마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소리 높여 일깨우기보다는 나직하고 잔잔한 어조로 들려주는 것만으로 어린이의 이성을 두드리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작은 집에 닥친 일이 불행인지 행복인지는 어린이 스스로 판단할 몫으로 남겨두는 것도 이 그림책에서 돋보이는 점의 하나이다.

4.케이티와 폭설(1943)
제설차가, 폭설 때문에 소방서며 병원 같은 온갖 편의시설이 마비된 도시를 구하는 이야기.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와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가게와 도로와 도로 표지판과 자동차 종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며, 지도 보는 법을 익히게 해준다. 더불어, 맡은 바 자신의 소임을 열심히 하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의 주인공 케이티는 귀염둥이 어린이를 닮아 있다. 눈으로 뒤덮인 도시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빨간 제설차가, 씩씩하게 눈밭을 뒹구는 아이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책의 묘미는, 만화처럼 쓱쓱 속도 빠르게 이어지는 그림과 절묘하게 호흡을 맞추며 그림과 동등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글의 조화에 있다. 어린 아이들은 사물을 눈여겨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가장 먼저 굴러다니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아이는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의 바퀴를 돌리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또 어떤 아이는 자동차의 뒤태만 보고도 차종을 알아맞히고, 또 어떤 아이는 트럭이니 삽차 같은 온갖 탈것들의 용도를 물어 온다. 버지니아 리 버튼의 《케이티와 폭설》은 이런 어린이의 질문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그림책이다. 《케이티와 폭설》 첫 장을 넘기면 빨간 크롤러 트랙터가 나온다. 이 빨간 크롤러 트랙터가 바로 케이티이다. 케이티는 주행할 때에는 기어를 5단으로 하고, 후진을 할 때에는 기어를 2단에 놓는다. 케이티의 엔진은 디젤이고, 자유롭게 360도 회전이 가능하고, 포장 도로와 비포장 도로에 사용하는 타이어가 다르며, 불도저와 눈삽을 필요에 따라 바꿔 달 수 있는 튼튼한 트랙터이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트랙터에 대해 이렇게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트랙터의 외관을 큰 그림으로 설명하고 그 주변에 작은 그림들을 배치하고 짧은 글로 그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만화풍의 그림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곧바로 사로잡는다. 다음 장을 넘기면 빨간 트랙터 케이티는 어떤 일을 하는 탈것일까? 하는 아이의 궁금증마저 풀어 준다. 아이들은 “위험 도로 수리중 통행중 사고에 책임지지 않음” “도로 공사로 폐쇄”라는 안내문이 써 있는 공사 현장에서 불도저를 단 트랙터 케이티가 열심히 흙을 파내는 모습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로 보수 공사 현장에서 케이티가 빠지면 흙을 쓱쓱 파낼 수 있는 이는 없을 테니까. 또 큰눈이 온 날이면 도로에 쌓인 눈 때문에 환자를 실어올 수 없다며 아우성치는 의사들과, 불이 난 곳에 소방차가 갈 수 없다며 아우성치는 소방관과, 활주로에 눈이 쌓여 있어 비행기 이착륙이 불가능하다며 아우성을 치는 비행기들 주변에서 “물론 도와 드리죠, 저만 따라 오세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며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달려 나가는 케이티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은 특별히 생색이 나는 일도 아니고 특별히 쉬운 일도 아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케이티를 보면서 케이티가 하는 일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일들 가운데에 하나라는 사실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깨닫게 된다. 《케이티와 폭설》은 실감나고 속도감 있는 그림을 통해 작은 것까지 왜? 하고 물어오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동네에는 어떤 기관들이 있는지, 그곳은 어떤 일을 하는지까지 알게 해 주는 좋은 탈것 그림책이다.


5.생명의 역사(1962)
지구가 탄생한 순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구 위에 살았던 생명체들의 역사를 설명해준다. 연극무대와 같은 장중한 화면구성이 자연스럽게 시대 구분을 지어주며, 각 장에 담긴 내용의 검정도도 높다. 작자가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그림책으로 어린이들에게 고생물학, 지질학에 대한 지식을 알려준다. 아이는 자라나면서 궁금한 것도 많아지고,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어떻게든 한 생명을 둘러싼 환경을 총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싶어진다. 백과사전도 딱딱한 역사서도 해답이 되어주지 못하던 차에, 이 책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생명의 드라마, 인류의 환경에 대한 길잡이로 환영받고 있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완다 가그나 마저리 플랙과 더불어 미국 그림책의 황금기를 이룬 작가이다. 35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했지만 그녀가 남긴 작품은 채 열 권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버튼이 그림책을 만든 기간의 4분의 1에 달하는 8년이라는 시간이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 오롯이 바쳐졌다. 그 8년 동안 버튼은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그 작업에 매달렸고, 그렇게 해서 작품이 완성되고 난 후에 그녀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탈진 상태에 빠졌으며, 더 이상은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버지니아 리 버튼이라는, 이제는 그림책 고전 작가의 반열에 드는 작가의 창조력을 완전히 소진하게 만든 8년여 작업의 결실이 바로 이 《생명의 역사》이다. 표지를 젖히면 드러나는 표지 안쪽과 이어진 면부터 여느 그림책과는 전혀 다르다. “면지”라고 부르는 이 면을 활용하는 작가는 적지 않지만, 아무리 탁월한 작가라 하더라도 이 두 페이지에 태고부터 인류가 탄생하기 전까지 모든 생명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 낸 버튼의 능력에 비견될 만한 재능이 있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한 장 더 넘기면 빨간 융단 커튼이 내려진,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 문화 회관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화려한 프로시니엄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고, 한 귀퉁이에 선 팻말이 지금부터 볼 내용은 그림책으로서는 무척 생소하게도 모두 5막으로 된 연극이라고 일러 준다. 까만 제복을 입은 여자들이, 서로 손을 꼭 잡고 들어서는 가족들을 자리로 안내하고서 프로그램을 나누어 준다. 빨간 리본으로 묶은 화려한 프로그램이 나타나고, 내레이터들이 첫선을 보인다. 무려 4페이지에 걸친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나면 드디어 커튼이 젖혀지고 웅장한 우주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그림책에서 장엄함이나 웅장함을 기대하는 이는 아마 무척 드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 감동과 재미와 지식과 더불어 장엄함과 웅장함과 생명의 숭고함까지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이 작품은 경이롭기까지하다. 천문학자와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와 역사가가 저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들려 주는 지구와 지구 위의 모든 생명과 인류의 역사 이야기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휘어잡는 마력이 있다. 1943년에 칼데콧 상을 받은 그녀의 작품 《작은 집 이야기》를 그대로 닮은 마지막 몇 페이지는 버지니아 리 버튼 자신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버튼은 처음에는 새카만 머리칼을 찰랑대는 젊은 여자로 무대에 등장하지만 다음 페이지 무대 한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선 그녀의 머리칼은 빛이 바랬고, 그 뒤로는 무대에서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버튼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화면 안이며 그와 함께 관객들, 그러니까 독자들도 화면 안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무대 위로 늘어진 빨간 커튼이, 해 뜨는 창가에 쳐 있는 빨간 커튼이 되면서, 이제 몇십만 년 전, 몇 백만 년 전, 몇 십억 년 전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정확한 고증을 통하여 태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을 더듬어 낸 지식 그림책의 압권”이라고 한 《그림책을 주는 법》의 저자 와타나베 시게오의 평대로, 《생명의 역사》는 첫 출간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과학 그림책으로 첫손꼽혀 마땅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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