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리 버튼 버지니아 리 버튼(1909∼1968)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학장인 아버지와 시인이자 음악가인 어머니에게서 사물을 보는 정확함과 예술적인 감수성을 골고루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는 발레리나가 꿈이었으나, 후에 캘리포니아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여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조각가인 남편의 도움을 받아 예술적인 재능을 더욱 꽃피웠다. 하지만 진정한 촉매제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버튼은 둘째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 만화에만 열중하는 아들을 보고 만화를 뛰어넘는 그림책을 손수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어린이가 흥미로워하는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탓에, 첫 번째 그림책은 아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만다. 버튼은 좌절하지 않고 이번에는 만화 장르에서 긴박한 이야기 전개 기법과 역동적인 화면 구성을 대담하게 받아들여 다음 그림책인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를 완성했다. 첫 아들 아리스에게 헌정된 이 그림책은 물론 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출간된 지 반 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탈것 그림책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 뒤로 버튼은 삽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둘째 아들 마이클을 위해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케이티와 폭설> 등을 만들었고, 1943년에는 <작은 집 이야기>를 출간하여 칼데콧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버튼은 이에 그치지 않고, 태고부터 인류가 탄생하기 전까지의 웅장한 드라마를 담은 <생명의 역사>를 출간하여 과학 그림책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버튼은 어린이들을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난감이나 탈것 따위의 소재로 글을 재미나게 구성하는 게 그렇고, 두 페이지가 마치 한 페이지처럼 연결되어 S자형 구도를 이루는 그림과 그 그림이 주는 속도감과 역동성이 그렇고, 그림과 통일된 느낌을 주는 주는 글자의 배열이 그렇다 1.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1937) 증기기관차가 제 궤도를 이탈해서 벌이는 소동을 그린 이야기. 소리내어 읽을 수 있게끔 되어 있는 힘찬 문장과 극적인 모험을 떠나는 증기기관차의 질주를 보여주는 흑백 그림이 싱싱한 활기를 뿜는다. 작자의 어느 그림책보다 역동적이다. 흑백 그림이 지니는 상상의 여백, 증기기관차에 대한 지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미국 그림책의 황금기라 일컬어지는 1930년대 대표작가의 하나이다. 버튼은 만화에만 열중인 아들에게 보이려고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처음엔 아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의 긴박한 이야기 전개와 다이내믹한 화면 구성을 받아들여 이 책을 만들었고 단번에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아이들은 탈것을 무척 좋아한다. 모형 중장비며 기차며 비행기 같은 것을 가짓수대로 사 모으기도 하고 뒤태나 헤드라이트만 보고도 무슨 차인지 척척 알아맞히기도 한다. 저 혼자 굴러가는 탈것 자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섞인 동경과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당대의 어느 작가보다도 탈것 그림책에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모두 해서 아홉 권인 그림책 가운데에서 네 권이 탈것을 소재로 한 것이다. 버튼 자신도 엄마로서 탈것들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아이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난 그림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은 유난히 기차를 좋아하는 첫째아들 아리스를 위해서 집 근처에 있는 그로스터 선의 기관차를 모델로 하여 만든, 엄마의 사랑이 담뿍 담긴 그림책이다. 꼬마 기관차 치치는 도시락(탄수차)만 달랑 들고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떠난다. 뭐가 부족해서 울타리를 떠나는 건 아니다. 그저 주인공이 되고 싶고, “나 여기 있어요”라고 알리고 싶어서일 뿐이다. 치치는 주위의 사랑과 관심을 저 혼자 차지하고 싶어하고, 딱히 이유가 없는데도 말 안 듣고 떼만 쓰는 천생 “미운 세 살”이다. 하지만 막상 떠나보니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치치의 속도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면서 화면도 같이 숨이 가빠진다. 꼬마 기관차가 지나간 자리는 모든 그림이 사선으로 누워 있어서 무언가가 방금 쌩 하고 코앞을 지나간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전해 준다. 꽉 짜인 활자의 배열은 이 말괄량이의 탈출에 리듬감과 속도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치치가 불안감을 느끼는 부분서부터는 그때껏 살아서 펄펄 날뛰던 활자의 배열도 느슨하게 풀어져 화면 한귀퉁이에 다소곳이 자리잡는다. 이 부분서부터는 자음만 있는 활자, 그리고 이어지는 말없음표들로 먹을 것도 없이 낯선 길에 들어선 꼬마 기관차가 느끼는 두려움을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올빼미가 눈을 부라리고 있는 달빛 으스스한 어둔 밤에 선로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귀신 같은 몰골로 서 있는 나무들 밑에 오도카니 서 있는 꼬마 기관차 그림을 보라! 이 세상에 검은 콘테 한 자루만 있다고 해도 버튼에게는 그것이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호재였다. 꼬마 기관차가 전혀 악의 없이 벌이는 소동에 처음에는 모두들 화를 내지만 그 귀여운 말괄량이를 언제까지나 미워할 수는 없지 않을까? 치치를 무섭게 하는 나무들과 부엉이까지 치치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하나같이 치치를 향해 손을 내뻗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선 사이로 꼬마 기관차는 사이드 카의 호위까지 받으면서 자기를 지켜 주는 울타리로 돌아온다. 치치는 수많은 별들이 내려다보는 하늘 아래를, 조그만 헤드라이트를 켜고 연기를 뿜으며 달려가면서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아이들이 작은 경험을 통해서 엄마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훌쩍 크는 것처럼, 말썽 많은 모험을 하면서 꼬마 기관차는 그새에 부쩍 자라난 것이다. 2.마이크멀리건과 증기삽차(1939) 엔진의 발전 때문에 실업의 위기에 몰린 기관사와 증기삽차가 씩씩하게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 구성과 색채, 성격묘사와 극적으로 결말을 전환시키는 작자의 능력이 탁월하다. 참된 사랑으로는 낡고 쓸모 없는 것들로부터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진지한 주제를 신나고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고도의 산업사회. 소비가 미덕이고 이윤을 창출해야 쓸모 있는 것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자본주의 세상. 여기가 오늘날 우리 어린이들이 자라는 토양이다. 작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당연시되는 요즈음의 세태를 다시 짚어보길 권하고 있다. 책 속의 사내아이처럼 산업사회의 그늘에 새 빛을 줄 수 있는 애정어린 관심과 지혜로.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는 메리 앤이란 이름의 증기 삽차와, 산업 문명이 발달하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한 증기 삽차를 사랑하는 기관사 마이크 멀리건과 낡은 기계의 가치를 새롭게 창조해 낸 건강하고 밝은 금발 사내아이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빨간 증기 삽차 메리 앤과 그 삽차의 기관사 마이크 멀리건은 대단히 성실한 일꾼이다. 사람들은 사람 백 명이 일 주일 동안 해야 끝낼 수 있는 일을 혼자서 해내는 이 증기 삽차와 기관사를 너무나 대단하게 생각했다. 마이크 멀리건과 메리 앤은 구경꾼이 있으면 더욱더 힘을 내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증기 삽차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좀더 편리한 새 기계를 발명해 내놓고는 증기 삽차의 위대함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거나 처리할 방법을 연구한다. 하지만 마이크 멀리건은 빨간 증기 삽차를 버리지 못한다. 이런 마이크 멀리건을 보며 어떤 이는 새 증기 삽차를 살 돈이나 새 증기 삽차를 운전할 기술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이크 멀리건은 신 기술과 새 기계를 살 자본이 없어라기보다는 증기 삽차가 자신에게 아주 의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사랑한다”라는 아주 짧은 말로.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메리 앤은 쓸모 없고 무능한 존재가 되어 대도시에서 밀려난다. 마이크 멀리건과 메리 앤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아주 작은 시로 가서 시청 기초 공사를 하게 된다. 메리 앤과 마이크 멀리건을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한 작은 사내아이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발전하는 기계 문명 때문에 버림받은 패배자의 모습을 벗고 활기차고 건강하게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마침내 마이크 멀리건은 시청의 수위로, 메리 앤은 증기를 푹푹 뿜어내어 시청 회의실을 데우는 증기 보일러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버튼은 어린이들을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탈것 따위의 소재로 글을 재미나게 구성하는 게 그렇고, 두 페이지가 마치 한 페이지처럼 연결되어 S자형 구도를 이루는 그림과 그 그림이 주는 속도감과 역동성이 그렇고, 그림과 통일된 느낌을 주는 글자의 배열이 그렇다. 버튼의 이런 재능은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에서도 어김없이 잘 발휘되고 있다. 이 책은 삽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녀의 작은 아들 마이클을 위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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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그림책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