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 아키코
1. 작가 소개
하야시 아키코는 1945년 동경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화가의 스튜디오에 다니면서 드로잉을 배웠다. 요코하마 국립대학 교육학부 미술과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가 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잡지 《엄마의 친구》(후쿠인간 쇼텐 발행) 등에 컷을 그리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3년 처음으로 그림책을 발표했고,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일스트레이터로서 '미쓰마사 안노'의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공동 작품인 《All in a Day》의 참여 작가로 뽑히기도 했다.
아키코는 어릴 때부터 그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때에 느꼈던 즐거움과 기쁨은 어른이 된 뒤에도 생생하여, 다시 그 기쁨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바람에서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그의 조카들이며, 그 조카들은 늘 그를 후원해 주는 든든한 친구이자 훌륭한 독자였다. 이 원기왕성한 조카들과 그의 삶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 즉 일상생활에서 건져 낸 정감어린 그림들은 독자로 하여금 편안함과 잔잔함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 번역된 그림책만으로도 모두 13권에 이르며, 동양적인 그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어린이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간다.
2. 하야시 아키코 그림의 세계
아키코의 그림은 평범하다. 에즈라 잭 키츠나 레오 리오니처럼 콜라쥬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토미 웅게러처럼 강렬한 색채 대비를 통한 이미지 전달도 시도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교과서의 삽화처럼 그의 그림들은 편안하고 안정되게 느껴진다.
그가 그린 아이들의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면 놀랍게도 하나같이 아이들의 머리가 몸에 비해 굉장히 크게 그려져 있음을 알게 된다.
몸에 비해 얼굴이 지나치게 강조 되었는데도 조금도 어색하지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얼굴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니라 표정으로 아이의 감정을 나타내어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얼굴이 커졌는데, 독자 역시 아이의 표정만 보게 되어 그림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또 등장인물이나 사물을 옅은 수채화에 가는 붓으로 테두리를 그려 형상화했는데, 검은 테두리 선이 더 굵었으면 사물이 너무 강조되어 배경 화면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리라. 색채 역시 평범한 중간색을 사용하여 일상생활을 나타냈는데 중간색의 이미지와 글의 내용이 일치되었고 동양적인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낸 등장인물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어 아이들이 아키코 그림책을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1) 작품에 나타난 리얼리티
어린이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다. 어른 눈에는 전혀 새롭지 못한 일이 유아에게는 놀랍고 새로운 것으로 다가간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의 눈은 어른보다 더 날카롭게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지켜본다. 그래서 그림책에서 자기가 느낀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면 아주 좋아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동생을 보게 되었을 때, 유치원에 처음 간 날, 이사 가던 날, 목욕하는 것, 심부름하던 날의 감정을 읽어 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리얼리티를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림책은 실패다.
아키코는 이런 평범한 이야기를 그리면서 아이들에게 극적인 재미를 높이기 위하여 영화를 찍듯이 아이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물을 크게 확대하거나 과감히 삭제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순이와 어린동생》에서 커다란 트럭, 순이 눈에 비친 남자 어른의 모습,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서 커다랗게 그려진 이슬이 옆을 지나는 자전거, 몸통 부분만 그려진 아주머니의 뒷 모습들이 그러하다.
또, 기찻길을 그리는 <순이>를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크게 그림으로써 열중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순이> 동네 풍경을 먼 거리에서 원근감 있게 잡아냈는데, 이는 카메라가 순간포착으로 주요 장면을 보여주듯 적절히 형상화시켜 평범한 이야기를 극적인 재미를 가지고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혼자 가지마》《오늘은 소풍 가는 날》에서는 과감한 배경의 생략이 돋보인다. 아이들의 눈에 들어오는 사물만 그리고 나머지 배경은 색연필로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흰 공간으로 그냥 비워두어도 허전하거나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때문이리라.
이러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 구성과 영화기법을 이용한 적절한 그림의 표현으로 아키코만이 가지는 그림 세계를 구축했고, 평범함이라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소재에 극적인 재미를 갖게 한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혹은 있을 이야기와 우리 주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림을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그림의 표현력이며 이는 어린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에서 오는 것이다.
2) 《목욕은 즐거워》 《은지와 푹신이》에 나타난 환타지의 세계
《목욕은 즐거워》는 목욕을 좋아하는 아이가 오리인형 푸카를 가지고 목욕탕에 들어가는데, 수증기 속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물 속에서 사는 동물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같이 목욕을 한다.
마법사가 있는 게 아닌, 아이들의 공상의 세계 속에 큰 거북, 아기펭권, 물개, 하마, 고래가 하나 씩 나타냄으로써 유아의 목욕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큰 동물이든 작은 동물이든 장난감이든 모두 유아기에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아이들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뽀얀 수증기 속의 보이지 않는 세계와 푸카가 현실과 환타지를 이어주는 구실을 하는데, 비누를 삼킨 물개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눗방울과 부풀려진 비눗방울이 펑하고 터져 버리는 장면, 하마를 씻기는 장면이나 고래의 샤워 장면은 아이들에게 상상의 세계로 쏙 빠져들게 한다.
다 같이 놀던 동물들이 엄마의 등장으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끝 부분은 환타지 그림책의 전형이라 볼 수 있겠다.
태어날 아기와 친구가 되기 위해 모래 언덕에서 온 여우인형 푹신이는 마치 살아있는 친구처럼 그려져 있다. 은지와 함께 생활하는 푹신이가 점점 낡게 되자 모래언덕의 할머니를 찾아 기차를 타면서 푹신이는 은지를 돌보는 보호자 혹은 모래언덕 (할머니) - 어린이 이상향의 세계 - 으로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차에 내려 모래언덕의 장면으로 전환되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푹신이가 개에 물려가 푹신이를 찾아 다니는 은지의 애처로운 마음, 모래에 파묻힌 푹신이를 업고 내려오는 은지의 안타까움이 생활동화이면서 환타지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어린이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은지와 푹신이의 사랑이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오가며 때로는 보호자로 친구로 보살펴 주는 모습이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3). 하야시 아키코 그림책의 세계
1∼2세의 유아를 위한 그림책으로 아키코 자신이 글을 쓰고 그렸다.
아키코의 유아그림책 특징은 단순한 이야기를 기승전결의 탄탄한 구성으로 엮어 극적 재미를 갖는 것이다. 또, 몇 가지 색만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필요없는 배경은 단색으로 나타냈고, 아기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사물의 모양을 단순하게 그렸는데도 움직임이 생생히 살아있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재 역시 아기의 옷 입기나 막 걷기 시작한 아기의 걸음마, 음식 먹이기 따위 유아의 생활에서 흔히 있는 일들을 담아, 엄마가 아기와 실제로 놀이를 하면서 즐길 수 있다. 그림책을 가운데 놓고 엄마와 아기가 '어, 손이 나왔네. 발은 어딨지?'하는 언어와 동작들은 그림책과 일상을 재미있게 연결시켜 놀이를 통한 언어체험으로 아기에게 언어와 이미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달님, 안녕》에서는 지붕 위의 두 마리 고양이와 달이 뜨는 모습을 고양이에게 작은 움직임을 주어 리듬감 있게 묘사했다.
달님이 점차 환하게 떠오르다가 구름에 가려지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을 섬세하게 표현했는데, 간결한 문장과 짧은 이야기 속의 탄한 구성, 선명한 그림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구두구두 걸어라》에서는 막 걷기 시작한 한두 살 정도 유아의 서툰 발걸음을 아장 아장 걷는 구두로 표현했다. 하늘색과 연녹색의 단순한 배경에 아기의 신발이 리듬감있게 움직이고 《구두구두 걸어라》라는 말의 반복과 의성어들이 단순한 이야기지만 아기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인다.
《손이 나왔네》에서는 아기 혼자 옷 입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렸다. 연두색과 주황색을 과감히 사용해서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오게 -아기의 시선을 잡아 끄는- 한다. 그림 속의 아기가 애를 쓰며 이리저리 옷을 꿰는 동안 차례차례 손, 머리, 얼굴, 발을 익히고 옷을 제대로 입게 된다. 옷을 다 입은 아기의 천진한 표정에서 해냈다는 기쁨을 나타냈다.
《싹싹싹》에서는 숟가락질이 서투른 아기가 혼자서 이유식을 먹다가 자꾸 흘린다는 이야기를 한 박자 글의 구성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토끼인형, 곰인형이 흘린 스프를 아기가 싹싹싹 닦아 주고 아기의 입은 엄마가 싹싹싹 닦아 주는 내용을 흰색과 갈색, 주홍색과 연두색의 대비로 나타냈는데 이런 색상의 배합이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 끈다.
3. 쓰쓰이 요리코의 글과 조화
1945년 동경에서 태어난 쓰쓰이 요리코는 그림책과 동화 작가로 현재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고 《이슬이의 첫 심부름》《병원에 입원한 내동생》《오늘은 소풍가는 날》 《우리 친구하자》《혼자 가지마》 등의 글을 썼다.
요리코 글의 특징은 그림책의 소재를 평범한 아이들의 세계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지루해지기 쉬운 그 평범함을 발단, 전개가 있고 갈등과 절정의 아슬아슬함, 독자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하는 결말의 이야기 구성으로 극복한다. 이러한 한 편의 단편 소설처럼 짜임새 있는 구성이 아키코의 그림과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키코의 중간 톤의 그림과 뛰어난 장면 구성이 글의 내용과 잘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글과 그림이 완전히 일치될 때 어린이는 신뢰감과 공감을 가지고 그 세계에 들어가 즐거운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내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리코와 아키코는 어린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고 이런 공통점은 두 사람의 그림책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하겠다.▣ 탁 정 은 · 그림책연구 모임
<작품목록>
《이슬이의 첫 심부름》, HER FIRST SHOPPING, 1976 《순이와 어린 동생》, ASAE AND HER SISTER, 1979
《오늘은 무슨 날?》, 1979 《병원에 입원한 내 동생》, LITTLE SISTER GOES TO THE HOSPITAL, 1983
《오늘은 소풍가는 날》, I'M GOING CAMPING, 1981 《우리 친구하자》, 1986
《혼자 가지마》, AYAKO AND HER BIG BROTHER, 1981 《구두구두 걸어라》, TODDLE, MY SHOES, 1981
《목욕은 즐거워》, I LOVE TO TAKE BATHS, 1982 (1983년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수상)
《싹싹싹》, I'LL WIPE IT OFF ! 1981 《손이 나왔네》 WHERE'S MY HANDS ? 1986
《달님 안녕》 HELLO, MOON! 1986 《크리스마스의 세 가지 선물》 외 2권
《은지와 푹신이》 KON AND AKI. 1989년 (제 21회 講談社 출판문화상, 미국 READING-MAGIC AWARDS 수상) / 이상 한림출판사 발행의 번역서임
《숲 속의 숨바꼭질》 《휙휙 팽이가 돌면》 《똑바로 걸어요》 《019 - 012》 《내 빵 너의 빵》 《풀밭에서》 《종이 비행기》
< 참고 자료>
《그림책의 세계》/신명호/계몽사 《어린이와 그림책》/마쓰이 다다시/샘터
《유아에게 적절한 그림책》/이경우 외/양서원 《어린이 책의 역사》/존로 타운젠트/시공사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이상금 /한림 출판사 《어린이의 세계와 그림 이야기책》/김세희,현은자/서원
《그림책 읽어 주세요》/조준영/웅진출판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최윤정/문학과 지성사
《좋은 그림책 모음》/서당 엮음/도서출판 논장 《그림책의 역사》/안도우 미기오
《꿈꾸는 그림책》/한림그림책 소식지 97 가을호/한림출판사 《그림책 쓰는 법》/엘랜 E. M. 로버츠/보성사
1. 작가 소개
하야시 아키코는 1945년 동경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화가의 스튜디오에 다니면서 드로잉을 배웠다. 요코하마 국립대학 교육학부 미술과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가 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잡지 《엄마의 친구》(후쿠인간 쇼텐 발행) 등에 컷을 그리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3년 처음으로 그림책을 발표했고,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일스트레이터로서 '미쓰마사 안노'의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공동 작품인 《All in a Day》의 참여 작가로 뽑히기도 했다.
아키코는 어릴 때부터 그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때에 느꼈던 즐거움과 기쁨은 어른이 된 뒤에도 생생하여, 다시 그 기쁨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바람에서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그의 조카들이며, 그 조카들은 늘 그를 후원해 주는 든든한 친구이자 훌륭한 독자였다. 이 원기왕성한 조카들과 그의 삶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 즉 일상생활에서 건져 낸 정감어린 그림들은 독자로 하여금 편안함과 잔잔함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 번역된 그림책만으로도 모두 13권에 이르며, 동양적인 그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어린이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간다.
2. 하야시 아키코 그림의 세계
아키코의 그림은 평범하다. 에즈라 잭 키츠나 레오 리오니처럼 콜라쥬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토미 웅게러처럼 강렬한 색채 대비를 통한 이미지 전달도 시도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교과서의 삽화처럼 그의 그림들은 편안하고 안정되게 느껴진다.
그가 그린 아이들의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면 놀랍게도 하나같이 아이들의 머리가 몸에 비해 굉장히 크게 그려져 있음을 알게 된다.
몸에 비해 얼굴이 지나치게 강조 되었는데도 조금도 어색하지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얼굴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니라 표정으로 아이의 감정을 나타내어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얼굴이 커졌는데, 독자 역시 아이의 표정만 보게 되어 그림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또 등장인물이나 사물을 옅은 수채화에 가는 붓으로 테두리를 그려 형상화했는데, 검은 테두리 선이 더 굵었으면 사물이 너무 강조되어 배경 화면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리라. 색채 역시 평범한 중간색을 사용하여 일상생활을 나타냈는데 중간색의 이미지와 글의 내용이 일치되었고 동양적인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낸 등장인물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어 아이들이 아키코 그림책을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1) 작품에 나타난 리얼리티
어린이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다. 어른 눈에는 전혀 새롭지 못한 일이 유아에게는 놀랍고 새로운 것으로 다가간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의 눈은 어른보다 더 날카롭게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지켜본다. 그래서 그림책에서 자기가 느낀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면 아주 좋아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동생을 보게 되었을 때, 유치원에 처음 간 날, 이사 가던 날, 목욕하는 것, 심부름하던 날의 감정을 읽어 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리얼리티를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림책은 실패다.
아키코는 이런 평범한 이야기를 그리면서 아이들에게 극적인 재미를 높이기 위하여 영화를 찍듯이 아이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물을 크게 확대하거나 과감히 삭제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순이와 어린동생》에서 커다란 트럭, 순이 눈에 비친 남자 어른의 모습,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서 커다랗게 그려진 이슬이 옆을 지나는 자전거, 몸통 부분만 그려진 아주머니의 뒷 모습들이 그러하다.
또, 기찻길을 그리는 <순이>를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크게 그림으로써 열중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순이> 동네 풍경을 먼 거리에서 원근감 있게 잡아냈는데, 이는 카메라가 순간포착으로 주요 장면을 보여주듯 적절히 형상화시켜 평범한 이야기를 극적인 재미를 가지고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혼자 가지마》《오늘은 소풍 가는 날》에서는 과감한 배경의 생략이 돋보인다. 아이들의 눈에 들어오는 사물만 그리고 나머지 배경은 색연필로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흰 공간으로 그냥 비워두어도 허전하거나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때문이리라.
이러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 구성과 영화기법을 이용한 적절한 그림의 표현으로 아키코만이 가지는 그림 세계를 구축했고, 평범함이라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소재에 극적인 재미를 갖게 한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혹은 있을 이야기와 우리 주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림을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그림의 표현력이며 이는 어린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에서 오는 것이다.
2) 《목욕은 즐거워》 《은지와 푹신이》에 나타난 환타지의 세계
《목욕은 즐거워》는 목욕을 좋아하는 아이가 오리인형 푸카를 가지고 목욕탕에 들어가는데, 수증기 속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물 속에서 사는 동물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같이 목욕을 한다.
마법사가 있는 게 아닌, 아이들의 공상의 세계 속에 큰 거북, 아기펭권, 물개, 하마, 고래가 하나 씩 나타냄으로써 유아의 목욕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큰 동물이든 작은 동물이든 장난감이든 모두 유아기에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아이들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뽀얀 수증기 속의 보이지 않는 세계와 푸카가 현실과 환타지를 이어주는 구실을 하는데, 비누를 삼킨 물개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눗방울과 부풀려진 비눗방울이 펑하고 터져 버리는 장면, 하마를 씻기는 장면이나 고래의 샤워 장면은 아이들에게 상상의 세계로 쏙 빠져들게 한다.
다 같이 놀던 동물들이 엄마의 등장으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끝 부분은 환타지 그림책의 전형이라 볼 수 있겠다.
태어날 아기와 친구가 되기 위해 모래 언덕에서 온 여우인형 푹신이는 마치 살아있는 친구처럼 그려져 있다. 은지와 함께 생활하는 푹신이가 점점 낡게 되자 모래언덕의 할머니를 찾아 기차를 타면서 푹신이는 은지를 돌보는 보호자 혹은 모래언덕 (할머니) - 어린이 이상향의 세계 - 으로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차에 내려 모래언덕의 장면으로 전환되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푹신이가 개에 물려가 푹신이를 찾아 다니는 은지의 애처로운 마음, 모래에 파묻힌 푹신이를 업고 내려오는 은지의 안타까움이 생활동화이면서 환타지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어린이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은지와 푹신이의 사랑이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오가며 때로는 보호자로 친구로 보살펴 주는 모습이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3). 하야시 아키코 그림책의 세계
1∼2세의 유아를 위한 그림책으로 아키코 자신이 글을 쓰고 그렸다.
아키코의 유아그림책 특징은 단순한 이야기를 기승전결의 탄탄한 구성으로 엮어 극적 재미를 갖는 것이다. 또, 몇 가지 색만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필요없는 배경은 단색으로 나타냈고, 아기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사물의 모양을 단순하게 그렸는데도 움직임이 생생히 살아있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재 역시 아기의 옷 입기나 막 걷기 시작한 아기의 걸음마, 음식 먹이기 따위 유아의 생활에서 흔히 있는 일들을 담아, 엄마가 아기와 실제로 놀이를 하면서 즐길 수 있다. 그림책을 가운데 놓고 엄마와 아기가 '어, 손이 나왔네. 발은 어딨지?'하는 언어와 동작들은 그림책과 일상을 재미있게 연결시켜 놀이를 통한 언어체험으로 아기에게 언어와 이미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달님, 안녕》에서는 지붕 위의 두 마리 고양이와 달이 뜨는 모습을 고양이에게 작은 움직임을 주어 리듬감 있게 묘사했다.
달님이 점차 환하게 떠오르다가 구름에 가려지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을 섬세하게 표현했는데, 간결한 문장과 짧은 이야기 속의 탄한 구성, 선명한 그림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구두구두 걸어라》에서는 막 걷기 시작한 한두 살 정도 유아의 서툰 발걸음을 아장 아장 걷는 구두로 표현했다. 하늘색과 연녹색의 단순한 배경에 아기의 신발이 리듬감있게 움직이고 《구두구두 걸어라》라는 말의 반복과 의성어들이 단순한 이야기지만 아기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인다.
《손이 나왔네》에서는 아기 혼자 옷 입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렸다. 연두색과 주황색을 과감히 사용해서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오게 -아기의 시선을 잡아 끄는- 한다. 그림 속의 아기가 애를 쓰며 이리저리 옷을 꿰는 동안 차례차례 손, 머리, 얼굴, 발을 익히고 옷을 제대로 입게 된다. 옷을 다 입은 아기의 천진한 표정에서 해냈다는 기쁨을 나타냈다.
《싹싹싹》에서는 숟가락질이 서투른 아기가 혼자서 이유식을 먹다가 자꾸 흘린다는 이야기를 한 박자 글의 구성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토끼인형, 곰인형이 흘린 스프를 아기가 싹싹싹 닦아 주고 아기의 입은 엄마가 싹싹싹 닦아 주는 내용을 흰색과 갈색, 주홍색과 연두색의 대비로 나타냈는데 이런 색상의 배합이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 끈다.
3. 쓰쓰이 요리코의 글과 조화
1945년 동경에서 태어난 쓰쓰이 요리코는 그림책과 동화 작가로 현재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고 《이슬이의 첫 심부름》《병원에 입원한 내동생》《오늘은 소풍가는 날》 《우리 친구하자》《혼자 가지마》 등의 글을 썼다.
요리코 글의 특징은 그림책의 소재를 평범한 아이들의 세계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지루해지기 쉬운 그 평범함을 발단, 전개가 있고 갈등과 절정의 아슬아슬함, 독자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하는 결말의 이야기 구성으로 극복한다. 이러한 한 편의 단편 소설처럼 짜임새 있는 구성이 아키코의 그림과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키코의 중간 톤의 그림과 뛰어난 장면 구성이 글의 내용과 잘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글과 그림이 완전히 일치될 때 어린이는 신뢰감과 공감을 가지고 그 세계에 들어가 즐거운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내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리코와 아키코는 어린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고 이런 공통점은 두 사람의 그림책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하겠다.▣ 탁 정 은 · 그림책연구 모임
<작품목록>
《이슬이의 첫 심부름》, HER FIRST SHOPPING, 1976 《순이와 어린 동생》, ASAE AND HER SISTER, 1979
《오늘은 무슨 날?》, 1979 《병원에 입원한 내 동생》, LITTLE SISTER GOES TO THE HOSPITAL, 1983
《오늘은 소풍가는 날》, I'M GOING CAMPING, 1981 《우리 친구하자》, 1986
《혼자 가지마》, AYAKO AND HER BIG BROTHER, 1981 《구두구두 걸어라》, TODDLE, MY SHOES, 1981
《목욕은 즐거워》, I LOVE TO TAKE BATHS, 1982 (1983년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수상)
《싹싹싹》, I'LL WIPE IT OFF ! 1981 《손이 나왔네》 WHERE'S MY HANDS ? 1986
《달님 안녕》 HELLO, MOON! 1986 《크리스마스의 세 가지 선물》 외 2권
《은지와 푹신이》 KON AND AKI. 1989년 (제 21회 講談社 출판문화상, 미국 READING-MAGIC AWARDS 수상) / 이상 한림출판사 발행의 번역서임
《숲 속의 숨바꼭질》 《휙휙 팽이가 돌면》 《똑바로 걸어요》 《019 - 012》 《내 빵 너의 빵》 《풀밭에서》 《종이 비행기》
< 참고 자료>
《그림책의 세계》/신명호/계몽사 《어린이와 그림책》/마쓰이 다다시/샘터
《유아에게 적절한 그림책》/이경우 외/양서원 《어린이 책의 역사》/존로 타운젠트/시공사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이상금 /한림 출판사 《어린이의 세계와 그림 이야기책》/김세희,현은자/서원
《그림책 읽어 주세요》/조준영/웅진출판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최윤정/문학과 지성사
《좋은 그림책 모음》/서당 엮음/도서출판 논장 《그림책의 역사》/안도우 미기오
《꿈꾸는 그림책》/한림그림책 소식지 97 가을호/한림출판사 《그림책 쓰는 법》/엘랜 E. M. 로버츠/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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