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한글 어떻게 가르치고 활용할 것인가?

홍 솔 2017. 5. 22. 00:23



삶은 물처럼 스스로 길을 만들고 그 길에서 사람을 만났다 잠시 머물다 또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간절히 원하여 이루어 내는 기쁨도 있을 터인데 간절히 원하는 것은 멀고 높기만 하고,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오래도록 포기하지 않고 눈을 맞추니 평범한 하루가 쌓여 탑이 되고 탑이 쌓여 작은 역사가 된다. 

측은지심으로 시작한 훈민정음 연구가 5월 19일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 앉아 눈과 귀가 호사하는 영광을 누리는 데까지 이어졌다.

집, 학교 다음으로 익숙한 여의도, 역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교회 가는 길 숱하게 바라본 국회의사당이었건만 건물 안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다. 하교지도까지 끝내고 바로 날아 왔는데 2부 <훈민정음 창제원리의 교육과 활용> 발표 중이었다. 1학년인 옆 반이랑 우리 반은 이미 훈민정음 원리로 한글 가르치고 있는데...... 정규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거역할 수 없어 가 나 다 라 교과서대로 쬐끔 가르치다 가가 가가 카카카 작은별 노래에 맞추어 가획원리 가르치고 기본 자음, 기본 모음, 조금 센 소리(자음), 거센 소리(자음), 재출자 주사위 따로 만들어 창제 원리를 가르치는 조금은 소심한 아직은 조심스러운 나와는 달리 지난 겨울 훈민정음 창제원리 교수법 먼 길 달려와 배운 1반은 미해득자가 있다며  칠판에 ㄱ ㅋ, ㄴ ㄷ ㅌ ㄹ, ㅁ ㅂ ㅍ , ㅅ ㅈ ㅊ , ㅇ ㅎ 자음 카드 아예 붙여 놓고 수업 시간에 과감히 훈민정음 원리로만 한글 가르치고 있는데 말이다.


3부<훈민정음을 활용한 산업화. 세계화>는 공부해보지 않은 분야라 새로웠다. 글꼴 산업 부문에는 눈 번쩍 뜨고 귀 쫑긋 세우고 들었다.

필경지 한 묶음과 펜 하나면 세상 다 가진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주보 편집으로 시작해서 주보 편집으로 끝난 대학시절. 다른 사람은 신앙이라든 지 삶의 의미 그런 걸 찾아 선교단체 활동 했을 터인데 그보다 난 연합 서클 주보 편집하는 그 즐거움으로 4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청탁한 원고가 들어 오면 원고에 맞는 그림을 찾아 넣고 원고 제목은 여기저기 광고 글씨 간판 글씨 그 때 그 수준에서 엄청 연구 고민하며 나름 멋을 부렸다.

30여년 전 매주 밤 늦도록 여전도 회관 어느 사무실에서 했던 그 작업이 요새 말로 손글씨요  켈리그라피 라는 요상한 이름이고 원고를 낸 사람은 자기 원고를 누구 글씨로 써 달라고 부탁도 했는데 그게 글꼴의 초기 모습이렸다.

마음은 원이로되 손이 안 따라주던 수습수준의 우리와는 달리 미술 전공 글과 그림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던 직장인반 나사렛순 주보 담당 왕언니의 작품은 매주가 예술작품이었다. 글씨와 그림이 한 몸이었다가 모음 획으로 그림을 그렸다가 자음으로 그림 그리며 내용을 요약하다가 글자 자체가 그림인 양 자유자재로 작품을 만들어 내던, 인어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고 전도사님과 결혼한 이름도 가물가물한 그 언니의 작품을 능가한 손글씨, 삽화를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 작품들을 사진이라도 좀 찍어 놓을 걸 아쉽다.


세상 살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훈민정음 창제원리로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홀로 그리도 쓸쓸히 진지하게 교재로 원고로 강의로 떠들었는데, 혼자 떠들다 사라지는 깊은 산 속 메아리인 줄 알았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을 그것도 큰 영향력을 미치시는 분을 뵈니 세상은 혼자가 아닌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한 토론회 장을 마련해주신 강길부 의원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