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 록웰
노만 록웰 Norman Rockwell (1894-1978)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노만 록웰(1894~1978)은 평생 4,000점 이상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남겼다.
그의 그림과 드로잉 작품은 잡지의 커버와 상업광고 그리고 책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사용된 것들이다.
그의 작품은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고,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20세기의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연대순으로 볼 때 그의 작품은 변화하는 세상을 말하였고, 즐겁게 놀고 있는 뉴욕의 아이들을 그렸고, 일하고 있는 여성, 그리고 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 한 세기 전 만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일을 해낸 인류의 모습 등을 그렸다.
록웰은 189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무릎까지 오는 바지를 입은 어린 나이부터였다.
14세에 그는 '뉴욕 예술 학교' 예술학부에 입학했다. 1910년, 16세에 그는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고등학교에 입학. 그러나 곧 그는 토마스 포가티와 조지 브리그만과 공부했던 '예술 학생 연맹(The Art Students League)'으로 옮겼다. 일러스트레이션에 있어서 포가티의 가르침은 록웰로 하여금 상업적인 그림에 눈뜨게 했고, 브리그만으로부터는 그림의 테크닉을 배웠다.
그리고 그는 10대에 '보이스 라이프'사의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그곳은 보이스카웃에 관한 도서를 출판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청소년 출판물에 들어가는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을 프리랜서 자격으로 그리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16년, 22살 되던 해, 그는 처음으로 유수한 잡지의 커버를 작업하게 되었다. 그 잡지는 바로 자신이 '미국의 가장 위대한 쇼윈도우'라고 생각했던 'The Saturday Evening Post'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47년 동안, 그는 그 잡지의 커버를 321점이나 그렸다.
그리고 1943년, 그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국회 여설에 영감을 받아 네 개의 자유에 대한 그림을 그렸고 그것들은 'The Saturday Evening Post'의 유명한 에세이와 함께 게재되었다.
그가 그린 '언론의 자유', '예배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그 작품들은 미국 전역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1973년, 록웰은 자신의 작품들을 스톡브릿지에 모아놓고 자신의 박물관을 만들어 갔다.
1976년에 그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더욱 박물관 건립에 신경을 썼고 1977년에는 '생동감있고 매력적인 인물'로 '자유 매달'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는 1978년 11월 8일, 84세의 나이로 스톡브릿지 자신의 집에서 평화롭게 삶을 마쳤다.
그의 작품들은 한 예술가의 발전하는 모습과 그가 사랑한 미국의 혹은 세상의 발전하는 모습을 담고있다.
출처: 월간 일러스트 2000년 7월호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의 정겨운 모습 - 노만 록웰의 따스한 그림들
그렇습니다. 원래 할머니/할아버지와 손자/손녀는 '통하는 사이'입니다.
할머니/할아버지와 손자/손녀 사이의 끈끈한 유대는 록웰 그림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가족 식사기도>에는 할머니뿐 아니라 할아버지도 손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식사기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집에서
하는 식사라는 점이겠지요. 아마 할아버지가 소리내어 기도를 하시고 할머니는 '아멘, 아멘' 하시는 듯 입이 조금씩 딸싹거리는 것
같습니다. 손자는 그냥 조용히 침묵... 하고서 듣고 있겠지요.
이 그림을 보면서 조금 안쓰러운 게 있습니다. 부모는 어디 가고 어린 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것일까, 그리고
저렇게 '간절하고 진지한 감사기도'를 드리는 식탁이 지나치게 조촐하다는 겁니다.
세사람을 위한 식탁위에 작은 남비 하나. 그런데도 세 사람의 기도 모습은 정말이지 진지합니다.
손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할머지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본을 받아 밥상머리 신앙을 배워가는 손자의 모습
이 보는 이의 가슴을 한편 뿌듯하게 만들면서도 싸아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가족 식사기도>와 <식사기도>에 나오는 아이의 자세가 거의 같지 않습니까? 록웰이 한번 연습한 인물 묘사를 두 번
써먹은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거야 물론 붓 쥔 사람 맘이지요.
록웰 그림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손녀의 관계는 이렇게 경건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하고 고민도 같이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장면이 많습니다.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의 등장횟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 좀 특이하기는 합니다만.
위 그림은 록웰이 1923년에 그린 <프라이빗 콘서트(Private Concert)>라는 작품입니다.
퉁퉁한 할아버지가 첼로를 켜고 이제 막 서너 살이나 됐음직한 손녀는 할아버지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손녀 아이는 마치 무도복을 입었다고 상상이라도 하듯이 짧은치마자락을 두 손으로 사뿐히 집어들고 어리광 같은 춤을 춥니다.
혹은 이미 춤을 마치고 인사하는 건지도 모르지요. 그걸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미소가 정겹습니다.
여리고 자그마한 손녀와 푸짐하고 여유로운 할아버지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프라이빗 콘서트>에 흐르는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요?
아마도 네 살짜리 손녀를 위한 무도곡이라면 <반짝 반짝 작은 별>이거나 <원숭이 10마리 침대위에 뛰노네>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1919년 작품인 <바다를 바라보며(Looking Out to Sea)>에서는 배경이 바닷가 마을입니다.
할아버지는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손자와 함께 언덕에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봅니다.
할아버지는 뱃사람 제복을 입었고 선장 모자를 썼습니다. 검게 타고 못이 박혀 울퉁불퉁한 손은 그가 뱃사람으로 살아온 노동의
세월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낡고 더러워진 선원 자켓과 뭉그러진 모자, 그리고 구색을 갖춰 입지 못한 바지를 보면 노동의 세월
끝이 그다지 유복하지 않음도 알 수 있습니다. 구부정한 허리와 오른손의 지팡이는 돌이킬 수 없는 세월 힘을 말해 주는군요.
할아버지가 오늘은 손자녀석에게 앙증맞은 세일러복을 입히고 손에는 수병 모자를 들려서 바닷가 언덕에 올랐습니다.
하늘에는 갈매기가 날고 바다는 따사로운 햇빛에 투명한 연녹색으로 빛납니다. 멀리는 돛배들이 나가는지 들어오는지...
이제 살날이 몇 년 남지 않았을 할아버지는 이제까지 산 날이 몇 년 되지 않은 손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줄까요.
자신의 모험담이겠지요. 물론 '뻥'을 좀 섞어서 말이지요.
혹은 그 '두 남자'는 자기들 사이에 낀 수십 년의 시간과 경험의 넓이와 깊이를 망각한 채 동시에 바다의 매력에 푸욱 젖어서
말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경우에라도 두 사람의 가슴속에는 각각 서로 다른 것이 차 오르겠지요.
한 가슴에는 우수가, 다른 한 가슴에는 희망이....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항상 공손한 것만은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선물(Grandpa's Present)>에서는 외출했다 돌아오시는
할아버지께 인사조차 올릴 시간도 없이 일단 호주머니부터 뒤지는 '버릇없는(?)' 손주 녀석을 그렸습니다.
(화질이 별로 좋지 않은 걸 용서하십시오. 작은 그림을 확대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찾았군요. 왼쪽 호주머니를 먼저 뒤졌으면 좋았을텐데요.
선물로 사온 강아지 녀석은 '깜짝' 놀래주려는 할아버지 생각을 어기고 살짝 기어 나와 손자녀석의 귀염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조금 있다가 자기가 새 주인에게 선사할 기쁨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물론 짐작 못하는 눈치구요.
버르장머리 없는(?) 손자를 받아주는 할아버지의 미소는 '그래 찾아봐라'하며 벌린 양팔 길이 만큼이나 넉넉합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손자 이야기는 <눈사람 초상(Portrait In Snow, 1919)>에서도 계속됩니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외출하신 사이에 할아버지를 흉내내어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는데요.
안경 모양이며 목도리 색깔, 눈사람 입에 꽂은 파이프를 보면 할아버지를 만들려고 무던 애를 쓴 건 사실인데요,
손자는 그래도 자신이 없는지 몸통에다가 아예 "할배"라고 써놓았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눈동자와 머리카락, 삐죽삐죽한 턱수염은 할아버지를 놀리고 싶은 장난기인 것 같습니다만, 그래 놓고는
혹시 야단맞을까봐 작품 뒤에 숨어서 할아버지의 반응을 살핍니다.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외출에서 기분이 좋으셨는지
화를 내기는커녕 '정말 나랑 똑같구나'하시면서 파안대소이십니다.
눈사람이 할아버지와 정말로 비슷해서가 아니겠지요. 손자녀석이 (엄마나 아빠나 혹은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할아버지를
눈사람 모델로 삼아 준 것이 고맙고 대견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선전신 들으시는 할아버지(Grandpa Listening in on the Wireless)>에서는 손자 녀석이 벌써 많이 컸습니다.
중학생쯤 돼 보이지요? 아마 학교 과학시간에 배운대로 무선전신기를 만들어 봤나 봅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를 모셔와서 '한번 들어보세요' 했겠습니다.
그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할아버지는 없습니다. 헤드폰을 귀에다 대고 손자가 보내오는 무전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때 귀청을 간지르는 신호음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돈 도스 돈 돈(L), 도스 도스 도스(O), 돈 돈 돈 도스(V), 돈(E) ... "
한편 <비평가(The Critic, 1928)>에서는 손녀딸과 할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손녀는 틴에이저가 되더니 그림을 배웁니다.
그러자니 종종 야외스케치를 나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좋은 길동무가 돼 주시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이내 할아버지는 할 일이 없으시군요.
손녀가 그림에 열중하는 동안 어디서 길고 나긋나긋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하나를 골라 꺾어 가지고 다니시면서
풀이파리 무신 입으로는 흥얼 노래나 부르셔야지요.
하지만 그것도 이내 무료해 지니까 슬금슬금 손녀딸 등뒤로 오셔서 진행중인 그림을 감상하십니다. 그림이 끝나면 뭐라고
말해줄까 비평거리를 머리 속에 정리하시면서 말이지요. 칭찬이 99퍼센트일게 뻔합니다. 1퍼센트는 '내가 뭘 알겠냐마는 ..."
그밖에도 록웰 그림에는 할아버지가 손자 혹은 손녀와 함께 등장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할아버지를 상대로 간호사 놀이를 하는
손녀를 그린 <간호사(Nurse, 1918)>, 손자가 허연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갑자기 호박 등을 할아버지 눈앞에 들이밀어 놀래켜
드리는 <할로윈(Halloween, 1920)>, 할아버지와 손자가 낚시질하는 모습을 그린 <낙시질(Fishing, 1929)>,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목마를 타고 흔들며 좋아하는 <흔들 목마(Rocking Horse, 1933)> 등등이 바로 그런 그림들입니다.
록웰이 그린 할아버지/할아버지-손자/손녀 그림들이 주로 그의 경력 초기 작품이라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록웰이 20대에 그런 작품을 많이 그렸다는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록웰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할머니/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용과 옛날 이야기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참, 그런데 그림마다 할아버지만 자꾸 나오시고 할머니는 안나오시는게 궁금하시다고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지금 여행중이시거든요. 아래 그림은 할머니의 <비행기 여행(Airplane Trip,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