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그림책작가

가브리엘 뱅상

홍 솔 2011. 1. 15. 00:30

 

 

 

50세가 넘어 그림 작가로 데뷔한 가브리엘 뱅상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브뤼셀 거리에 꾸며놓은 아틀리에의 창가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저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워서, 숲 속에 있는 것보다는 거리를 내다보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 여인이 바로 벨기에가 낳은 그림책 아티스트 가브리엘 뱅상입니다. 1928년 유럽의 작은 나라인 벨기에에서 태어난 모니크 마르텡은 예술을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수도인 브뤼셀 교외 소와뉴의 숲에서 자랐습니다.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데생의 재미에 푹 빠져 지냈던 그녀는 자신의 본명을 가브리엘 뱅상으로 바꿔 화가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채 나이 54세 되던 해인 1972년에야 비로소 그림책 작가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관조할 줄 아는 나이에 그림책 작가로 데뷔한 그녀였기에 그녀가 탄생시킨 그림책들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소재를, 잔잔한 이야기로 어깨의 힘을 빼고 풀어내고 있습니다.

 

떠돌이 개   -   가브리엘 뱅상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창 밖으로 개 한 마리가 휙 던져집니다. 고속도로를 따라 쏜살같이 자동차를 뒤쫓아보지만, 이제 이 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외톨이 신세입니다. 버림을 받고 떠돌이가 된 개는 까맣게 멀어지는 자동차를 보며 우두커니 멈춰 서서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슬픈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다가도 정처 없는 신세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일념으로 다른 차들을 쫓아가 보기도 하지만 사고만 일으킬 뿐, 정작 이 떠돌이 개에게 찾아드는 것은 버려진 처량한 비애감이요, 기진맥진한 피곤입니다. 낙담한 채 바닷가와 도시를 어슬렁거리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년을 만나게 되는 모습에 이르면 데생 작품 한 점 한 점에 서려있던 서글픈 감정이 이내 안도감으로 바뀌고 뭉클한 위안이 되어 따듯한 눈물 한 방울을 만들어 냅니다.

 

 

 

 

따듯한 연민의 시선으로 함께 바라본 그림책 『떠돌이 개』 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절절한 외로움에 눈물 훔치게도 되고, 우두커니 거울 속에 비치는 홀로인 자신의 모습에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게도 됩니다. 대사는커녕 그림에서 색깔도 모두 지워버린 모노톤의 목탄 데생 64편으로 구성된 『떠돌이 개』는 가브리엘 뱅상이 수묵화에서나 볼 수 있듯 한껏 여백을 살려 독자가 자신들의 공감을 그리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단색이지만 채도의 농담을 통해 느껴지는 깊이감은 삶의 비의를 다시금 돌이켜 보도록 하는 힘이 느껴집니다. 비록 버려진 개 한 마리에게 감정이입하여 반추한 우리 삶의 쓸쓸한 존재감이라고는 하지만, 친구를 찾게 된 떠돌이 개의 모습을 통해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지는 듯한 노곤한 해방감은 그 어느 작품에서도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모노톤의 단조로움은 다양한 시선으로 자유자재로 구사된 크로키를 통해, 카메라의 렌즈처럼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리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원근감을 통해 지나치게 감정으로만 실릴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해주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림책 읽기를 가능하게, 그러므로서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환원해서 되비칠 수 있도록 하는 그림 장치는 감히 젊은 작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작가의 철학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코끝이 시큰해진 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망연히 있노라니 문득 자코메티의 ‘개’ 철근 소조가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는 본래 혼자 있으면 이렇듯 앙상한 존재일까?‘ 왠지 서글픈 느낌이 쉽사리 가시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10대 그림책, 보스톤 글로브 혼 북 어워드 명예상, 미국 학부모 선정도서 금상, 일본 도서관협회 선정도서 등등 수상 경력이 화려한 이 책은 솔직히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혼자서만 몰래 오래오래 보고 싶은 책이지요.